2009년 2월 25일 수요일
미래 4년 고난
이런 센스쟁이들 하고는. 불펌. 원작자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문제되면 내리겠습니다. :|
여튼. 이명박 정부가 생긴지 딱 1년 지났단다.
상황은 절대로 희망적이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고 생각보다 무능하지도 않다.
4대강 정비 사업 추진은 이 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이며 얼마나 집요한지 대변한다.
사람이 죽어도 책임자 한명을 자르기가 그렇게 힘들며, 그나마 책임을 물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힘들어 했는데,
두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으면서도,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도록 판사를 지정한다.
물대포로 시작했던 폭력은
명박산성이라는 차단의 폭력으로 발전했고,
미네르바라는 복수의 폭력으로 발전했고,
사이버 모욕죄, 언론악법, 집시법 개정을 통해서
을 통해서 재갈을 무리고 눈을 막으려 한다.
최루액을 농성 현장에 쏟아 부었고, 사람이 불에 타서 죽었다.
폭력의 수위는 점점 더 올라가고 있지만,
점점 그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지치고 지리멸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야당은 여-야의 프레임을 과감히 깨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점점 더 줄어든다.
생존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경제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만이 지상 과제가 되어버린 사이에,
어느새 이러한 모든것들에 익숙해진다.
물대포가 익숙해지듯이, 미네르바의 체포에 익숙해지고,
용산참사에 익숙해진다.
결국. 익숙해지면, 87년 체제는 무너질거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잘못 평가하고 있던 부분이 있다.
이 정부는 너무나도 집요하며 효율적이고 또한 추진력있다.
대운하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등, 그들이 추진했던 것들은
시간이 지연되기는 하더라도, 착실히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
대운하사업이 4대강 정비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오는 기만과 망각의 방법은
연쇄살인으로 용산참사를 덮는 언론 조작능력은
그들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방법들을 알고 있는 베테랑인지를 보여준다.
이번 정부와 입법부에서 처리하고자 하는 많은 법안들에 대한 집요하고도 꾸준한
공세는 이들이 얼마나 추진력있음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이루어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너무나도 효율적이어서 나라도 그렇게 운영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와 토론과 같은 것을 벌이는 시간에 삽질 한번을 더 하는 것이 낫다는 효율성이
이들이 보여주는 효율성의 정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스스로를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한다.
공화국은 국가의 자산을 공적 소유로 한다는 것이며,
국가의 운영을 공공의 이득에 맞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공이란, 오만 허잡 자잘 단순 무식 귀찮 복잡 정체 불명인 한명의 개인이라도
국가의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것이며.
그 소유권 주장에 있어서 대통령이든 일개 대학원생이든 동일한 목소리 크기를 가진다는 의미다.
그러한 이익을 조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토론이 필요할것인가.
분명히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는게 이러한 토론이지만,
생략할 수 없는 게 공화국의 기본이다만.
그들의 효율성은 이러한 시간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국가는 어느새 국가의 개인만을 요구한다.
국가의 개인은 평가받아야 하며, 국가의 자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시험받아야 하며, 훌륭하지 않은 자원은 솎아져야 한다.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에게 국가의 자원을 투자할 이유는 없으므로.
무한경쟁. 그것이 일제고사의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 정책, 인권정책, 일자리 창출정책등의 근본적인 정책이 없이
땜질식으로 정책을 운영하고 있는 정부를 비판한다.
현 정부는 너무나도 효율적이며, 목적에 합치하는 수단을 가지고 착실히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을 본다면,
사기업의 운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들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나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화국화.
사기업에서 볼 수 있는 계급구조의 국가단위에서의 공고화라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촛불은 어쩌면 너무 일찍 터졌다.
조중동이 울부짖었던 허니문기간. 바로 그 시간이기에 촛불은 혁명으로 기화되지 못했고,
그러한 기회가 돌아오기위해서는 더 큰 희생과 더 큰 폭력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
촛불의 시작에 물대포는 없었다.
촛불이 불씨상태에서 되살아나는 자리엔 물대포부터 시작이다.
비폭력을 기대하고 비폭력을 요구하고 비폭력을 유지하려 했던
유모차부대에게 정부는 소화기를 퍼부었다.
그리고 아동학대로 고발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앞으로는 유모차를 데리고 나오면 소화기를 맞는게 당연한 시위 현장이 되었다.
모든 시위에서 소화기, 물대포 그리고 폭력은 너무나도 당연한게 되어버렸다.
촛불도, 그에 따라 폭력적이 되었고, 폭력의 행사에 익숙해졌다.
봄이 오면 더 큰 집회들이 열릴거다.
그리고 그 집회들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인해 질거다.
시위자도, 막는자도.
익숙해진다는 건 그런걸 의미한다.
우린 겨우 몰아냈던 폭력의 괴물을 이미 깨워버렸다. 자의든. 타의든.
이것이 현재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된 시간을 지나,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해지기 시작한.
완전히 당연해지면, 그 바깥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고리는 그렇게 완성된다.
체계에 반대하지만, 체계를 나갈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절망이다.
우리의 아이러니는 이렇다.
우리의 희망이 희생된 사람들에 있다는 것.
당연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
유길준이 우리의 희망이며, 노회찬이 우리의 희망이다.
검찰에 잡혀간 촛불시민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당연하지 않다고, 원래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꾸준히 증언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것에
거기에만 우리의 희망이 있다.
닮아가서도 안되고, 따라가서도 안된다.
국가의 개인이 아닌, 그저 개인이란걸 보여야 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싸워야 한다.
괴물과 싸우며 괴물이 되면, 아무곳으로도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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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가시면 안돼요! ㅠ_ㅠ.... 이런 글은 일촌공개를 하셔야 된다는... 쿨럭...
답글삭제유길준이 아니라 이길준이오.
답글삭제여튼 폭력에 폭력이 꼬리를 무는 현실이 안타깝네. 내 정의를 입 밖에 말하려면 주위부터 살펴보고 눈치를 봐야한다는게 말이지.
그나저나 내일 그 분이 오시는 거 맞는거 같은데 어쩌지?
유길준은 개화파였지. 이런 실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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